[한겨레] 엉덩이가 들썩이는 비경들
작성자 : 마로니에(마로니에) 작성일 : 2008-02-04 오전 10:43:56 조회수 : 7178
여행가 26명이 뽑은 6대륙 절경
사진·역사·생태·풍습까지 담아
백두·금강·한라산도 당당히 대열에



장미꽃 인생. ‘내 삶에 화려한 장미를 피우련다’ 마음먹고 고통을 인내하며 꿈을 키우는 사람을 가리킨다. 찔레꽃 인생. ‘절뚝이는 마찻길보다는 고속도로가 좋다’며 순탄과 안정을 택하는 쪽이다. 앞의 것이 도전형이라면 뒤는 안정형. 지난해 조동성 서울대 교수와 그의 제자가 한철 큰 꽃을 피우는 장미와, 늦봄부터 가을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는 찔레꽃을 월급쟁이와 고소득 전문직에 견줘 널리 알려진 비유다. 육상 경기로 치면, 장미꽃 인생은 처음부터 큰 걸음을 내딛기보다 마지막 순간의 비상을 기획하는 세단뛰기, 찔레꽃 인생은 초기의 높은 진입장벽만 넘으면 평탄한 삶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높이뛰기에 비길 수 있겠다.


» 이름도 절묘한 리플렉션 호수 뒤로 보이는 레이니어산



26명의 ‘여행가’들이 찍고 쓴 사진과 글을 엮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을 펼치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가방에다 여권 챙겨 문밖을 나서고 싶은 충동이 두방망이질을 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앉은 자리를 돌아보면 가방 끈을 슬그머니 놓고 돌아서게 되는 게 현실이다. 직장인 72%가 ‘특별히 일이 없는데도 야근을 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무릎을 ‘팍’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별의 장엄한 풍경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은데 ‘체조’만으로 그칠 때가 많다면 책으로나마 위안을 삼아 보자.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의 레이니어 산. 짙푸른 침엽수림과 솔송나무 숲에 둘러싸인 반백의 봉우리가 4392미터로 우뚝하다. 150년 전에 폭발한 적이 있는 활화산이어서 ‘재발’할 위험이 높지만 그 확률은 분명치 않다. 때문에 여름에는 트레킹 즐기는 이들과 야영객, 겨울에는 설피 체험에 나서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침엽수림 바깥으론 리플렉션(reflection) 호수가 있어, 그 이름처럼 산의 절반 가량을 ‘담아낸다’. 추위가 질색이라면 블루라군은 어떨까. 북중미 자메이카의 명물 블루라군은 같은 이름의 영화와 주연배우 브룩 실즈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언덕에 둘러싸인 석호로, 그 품의 안온함이 어찌나 컸던지 예전에는 해적의 은신처로도 쓰였다고 한다. 햇볕의 밝기와 시간에 따라 푸른색과 녹색을 오간다는 물빛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이미 벌거벗고 풍덩 뛰어들 태세다. 웨이브록은 어떤가. 오스트레일리아 서남쪽 끝자락에 있는 이 바위는 거대한 파도가 순간 응고된 것처럼 보인다. 가로 110미터 세로 15미터에 이르는 ‘파도’의 기괴함 앞에서 ‘5억년 전의 지구’를 그려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보물’로는 백두·금강·한라의 절경과 강원도 환선굴이 이름을 올렸다.

장미꽃 인생이든 찔레꽃 인생이든 ‘낯선 시간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축복이다. 누구에겐들 팍팍한 삶에 한 차례일지언정 단비가 내려주지 않을쏜가. 〈죽기 전에 꼭 … 〉의 어느 곳이든 펼쳐두고 어느 때 가겠다고 손수 정해두곤 ‘그날이 오면’을 꿈꿔 보자. 마침내 그곳에 이르러 흙을 만지고 물을 튀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목적을 실현했으므로, 또 여행의 본질은 자유일 것이므로 두 겹의 자유를 손에 쥔 까닭이다. 해묵은 ‘관념의 모험’이 현실의 풍경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의 짜릿함에 ‘오직 풍경이 거기 있으므로 내가 간다’는 말도 낳을 법하다. 하지만 편집자 말마따나 “지금 당장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없다면 또 어떤가.”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960쪽짜리 화보집을 들척대는 것도 여유로운 풍경의 한 조각이라 여기면 될 일이다.



기사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672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