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박경리씨 토지, 만화 대단해… 애썼어 찬사
작성자 : 마로니에(마로니에) 작성일 : 2007-06-28 오전 9:05:05 조회수 : 6813
"토지 '만화'는 대단해… 애썼어, 애썼어"
박경리씨,‘만화 토지’펴낸 오세영씨에 찬사…
“토지‘영화·드라마’는 맘에 안들어 안봤어

원주=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애썼어요, 애썼어. 문학은 추상이지만 만화는 구상이거든. ‘토지’가 구조도 복잡하고… 천 갈래 만 갈래 이야기라서 그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토지’가 영화도 되고 드라마도 됐는데 나는 마음에 안 들어서 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이 만화는 각색해낸 역량도 대단하고, 성의와 애정이 더 대단해요.”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81)씨는 처음 만나는 만화가 오세영(52)씨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씨는 대하소설 ‘토지’를 원작으로 한 ‘만화 토지’(1부 전7권·마로니에북스)를 최근 출간하고 원작자가 사는 이곳을 찾았다.

“내가 행운이지요, 내가 행운이지요.”(박)

“만화를 그리다가 막힐 때마다 찾아뵙고 영감을 얻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뵙게 되면 상상력이 위축될까봐 찾아뵙지 못했습니다.”(오)




오세영씨는 이태준·박태원 등 월북작가의 소설을 만화로 그린 ‘오세영의 중단편 만화문학관’으로 지난 1999년 대한민국출판 만화대상을 받은 중견 작가다. “토지를 그릴 사람은 오세영밖에 없다”(시사만화가 박재동)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일제·해방 전후사 소재 만화의 최고 작가로 꼽힌다. 원작자 박경리는 최상의 찬사로 오씨를 격려했다. “만화를 조금 낮춰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세영 작가는) 오늘날 만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어요. 이런 분들이 많아야 우리나라가 회복이 돼요.”

원작자가 보내는 뜻밖의 칭찬에 오씨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만화가 지망생이던 어린 시절 토지 초판본을 읽고 ‘이 작품만은 내가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린다면 ‘토지’를 망가뜨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어요. 이 작업을 하느라 ‘토지’를 30번 읽었습니다.” 오씨는 500~600명이나 되는 토지 속 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오씨는 지난 4년간 ‘만화 토지’에 매달렸다. 서울에서 살다가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2년 전 경기도 안성의 시골마을로 이사도 했다. “지금까지 20년간 그린 그림을 따져보니까 1만 페이지가 넘었어요. 그런데 그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은 3000페이지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생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 시간을 망가뜨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박경리씨는 오씨의 말을 듣고 대견스러운 듯 말했다. “참, 오늘 보니까 더 마음에 드네. 시골에 살면 서울이 더 잘 보여요. 마음이 바로 서면 세상이 훤히 보이는데, 마음이 비틀거리니까 세상이 잘 안 보이는 거지요.”

오씨가 “원작을 훼손하는 일은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박씨도 따뜻한 말로 화답했다. “작가가 절제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에요. 대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거든. 만화 속 옛 의복이나 부엌의 모습 등은 풍속사로서도 중요합니다. 아이들 역사, 논술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대단한 일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