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만화로 보는 대하소설 원작의 또다른 감동
작성자 : 마로니에(마로니에) 작성일 : 2007-05-14 오후 1:05:38 조회수 : 6381
만화로 보는 대하소설 원작의 또다른 감동

만화 토지 제1부(7권) / 박경리 원작, 오세영 각색·그림 / 마로니에북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일부 베스트 셀러에 힘입어 명작 소설이나 역사, 신화 따위를 만화로 다시 풀어내는 것은 유행에 가깝지만, 이것의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특히 논술바람이 불면서 ‘삼국지’나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원작 대신 만화라도 읽히려는 학부모의 희망에 힘입어 베스트 셀러 만화도 나왔으나 많이 팔린 만화가 잘 된 만화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쩌면 원작의 뼈대와 감동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를 만화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아예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보다 어려울 지 모른다. 특히 원작이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명작인 경우, 만화가가 받는 압박감은 더욱 클 듯하다.

알려지다시피 소설가 박경리씨의 원작 ‘토지’는 조선왕조의 붕괴로부터 근대 한국이 성립하기까지 약 60년의 역사를 전5부 16권에 담은 대하소설이다. 경남 하동 평사리에 터를 닦고 살아온 대지주 최참판 가문의 4대에 걸친 비극과 농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점차 한반도 전체와 만주, 북간도, 일본과 중국, 러시아라는 광대한 역사공간으로 무대를 확장하며 피눈물로 일궈내는 한민족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담은 대서사시다. 지주, 소작인, 노동자, 기생, 무당, 친일파, 일본인 등 등장인물만 700명에 달하는 소설은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서 시대상을 담아내면서 근대 사회가 탄생하기까지의 민중의 삶과 한과 투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천태만상의 인간상과 풍속, 그리고 정감어린 자연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게 어우러진다. 이 소설이 여러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 것에 이어 이번에 만화로 재탄생한 것도, 탄탄한 줄거리에 못지않게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장면 하나하나를 머리 속에 떠 올리게 하는 힘 때문이리라.

하지만 원작이 지닌 이런 힘은 소설을 만화로 풀어내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 못지않게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소설에 문자 언어로 표현된 정황과 이미지와 감정을 그림 언어로 구현해내는 것이, 그러면서도 원작이 지닌 맛과 감동과 인간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작이 지닌 아우라에 짓눌릴 경우, 번역도 재창작도 아닌 어정쩡한 만화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행히 국내 최고의 리얼리즘 만화가로 평가받는 오세영씨는 ‘만화 토지’에서 명작을 만화화할 경우 가능한 문제를 훌륭하게 피해가고 있다. 만화가 박재동씨가 추천사에서 “등골마저 오싹하다”고 했거니와, 그림에 드러난 이들의 모습과 동작, 의상과 표정의 묘사는 확실히 빼어나다. 배경이며, 구석의 소도구며, 옷 매무새며, 주름 하나하나에서 지나간 우리 역사와 삶의 냄새까지 그대로 녹화했다는 박씨의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다만, 만화의 초반에서는 원작의 무게에 눌려 어깨에 지나친 힘이 들어간 게 아닌가하는 느낌은 없지 않다. 그래, 만화가의 손으로 되살아난 소설 속의 정경을 한껏 즐기면서도 왠지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어깨는 가벼워지고, 펜끝은 더욱 자유로워진다. 원작의 감동이 만화에서 또다른 빛깔의 맛으로 살아나는 것도 이 때쯤이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