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 단색화에 담긴 삶과 예술
저자: 케이트 림
역자:
구분: 국내서
발행일: 2019년 05월 10일
정가: 25,000원
페이지: 304 p
ISBN: 978-89-6053-571-8
판형: 188×250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2019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앞둔

박서보 화백의 삶과 예술을 한 권에.



검은 상흔을 쏟아낸 캔버스부터

스며들고 품는 종이의 ‘묘법’까지

부단한 창작으로 다다른 90년 가까운 세월

삶은 예술에 녹아들고 예술은 그의 삶이 되었다



이 책은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 박서보의 전기적(傳記的) 관찰에 토대를 두면서, 각 작품들이 변화해 온 문맥을 살핀 기록이다. 박서보 화백 본인과 동료, 배우자의 증언과 시대별 자료 속 기록을 토대로, 격랑의 세월 속에 그의 생각과 느낌이 어떻게 각 작품 속에 응축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담았다. 흑백 사진과 함께 펼쳐지는 열두 챕터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전 생애와 창작 역사를 아우르는 특별한 시간 여행이다. 더불어 책의 후반부에는 컬러로 된 시대별 작품 도판을 수록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한 유년기부터 한국 전쟁 속 청년기, 신진 작가로서 주도한 “반국전 선언”과 1961년 파리를 누빈 그의 행보가 6장까지 이어진다. 이후 원형질, 유전질 연작으로 이어진 작품 활동을 비롯해 마침내 묘법에 이른 변화 등 작품 세계의 중요한 궤적을 모두 담았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페이지, 박서보와 단색화

“박서보 화백의 삶과 예술을 빼고 단색화를 논할 수 없고,

단색화에 대한 이해와 비평 없이 후세대의 미술 이야기를 쓸 수 없다”



한국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박서보의 화업(畵業) 60여 년의 작품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큐레이터이자 미술 저술가인 저자의 개인적인 해석과 평가가 자연스럽게 첨가되었다, 저자 케이트 림은 미술 비평 전문가들만 향유하는 해설이 아닌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에서 해설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전문적 현대미술 비평 개념이나 논의의 쟁점들을 몰라도 박서보 작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 묘법에 이르렀는지, 단색화가 개별 작가와 사회의 어떤 역사를 통해서 태어났는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책은 박서보 화백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단색화가 어떤 예술인지 알고 싶은 이들, 더불어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 과정과 특징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초대이다. 그 활기차고 역동적인 미술 이야기의 장(場)에 많은 이들이 들어오기를 꿈꾸며, 한국에도 서구미술사 못지않은 매력적인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자부심을 모두와 나누고자 한다.

저자가 강조하듯 박서보 화백을 비판하는 이들조차도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박서보 화백의 삶과 예술적 성취를 논하지 않고 단색화를 논할 수 없고, 단색화에 대한 이해와 비평 없이는 후세대의 미술 이야기를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단색화는 그냥 한 세대에 끝나지 않고, 마치 곳곳으로 흩어지는 여러 갈래의 햇살처럼 풍부한 파장을 갖고 한국 현대미술에 흐르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미술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생각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이다.


2019년 5월 18일 - 9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박서보 작가의 작품 13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을 선보이는 회고전이 예정되어 있다.



400자 소개
미술 칼럼니스트이자 큐레이터인 케이트 림은 전기(傳記)와 같은 관찰과, 다양한 독자들을 위한 문턱을 낮춘 해설로 박서보 화백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열두 챕터에 담아냈다. 저자는 2007년 봄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박서보 화백과 배우자 윤명숙 여사로부터 지난 시간이 남긴 특별한 기억들을 전달받았다. 이 생생한 육성에 더하여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시대별 기록으로부터 초기작에서 현재의 묘법에 이르는 변화의 결을 짚었다. 90세를 바라보는 대표 단색화 작가의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앞둔 지금, 이 책은 각 작품에 서린 박 화백의 마음과 삶을 헤아려 볼 수 있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에는 박서보 작가와 동료, 가족의 흔치 않은 옛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 함께 실렸고, 책 끝에는 시대별 서른다섯 점의 작품 도판도 수록했다.


책 속으로
책을 완성하면서 나는 의외의 큰 선물을 얻었다. 박서보 화백 개인과 밀착된 한층 복잡한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 일차적 이해를 기반으로 미술에 관한 나의 이해와 인식을 수유(授乳)하는 셀 수 없이 많은 파장이 생겨났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계를 부유하는 여러 중요한 논점들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자랐다. 바로 이 점이 내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려는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책을 시작하며’에서

그렇다면 박서보는 좀 하기 싫어도 할 수 없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외우고 문제를 풀려고 도서관에 갔을까? 아니다. 그는 도서관에 가던 발걸음을 돌려서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달음질을 쳤다. 박 화백은 웃으면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연 만들어서 연날리기하는 데 완전히 미쳐 있었어요. 입학시험이고 뭐고 관심사 밖이었지요. 아버지한테 꾸벅 인사하고는 곧바로 친구랑 연 날리러 줄행랑을 쳤어요. 아버지는 그걸 전혀 모르셨어요. 내가 공부하러 나간다고 생각하셨어요.”
1장 ‘회상(回想): 가족, 성장’에서

박서보에게 있어 6·25 경험은 그의 예술에 대한 최초의 피하지 못하는 욕구를 발화시킨 사건이었고, 그 욕구의 해결을 위해 뛰어든 폭풍우 한가운데의 ‘눈동자’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남한 사회에는 서서히 평화가 찾아왔고 6·25와 같은 참변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이후,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박서보는 전쟁의 잔인한 공포, 굶주림, 학살에 대해 수없이 이야기하였다. 전쟁의 공포는 그의 영혼과 육체를 도려낸 듯한 느낌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한참 후에도, 죽기 직전 “어머니!” 하고 외치는 절규의 외마디가 깊이 각인되어, 자신의 내부는 그 기억이 남긴 무게로 금이 가고 부러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는 인간이 초래한 전쟁이라는 잔혹함 그 자체 앞에 마치 알몸뚱이로 서서 견뎌내야 했던 공포스러운 기억을 한편에 간직한 채, 다시 전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세대의 공통된 감추어진 증상이었을 것이다.
2장 ‘전쟁: 6·25 수업’에서

박서보는 이 「4인전」을 기획하며 한국 미술계에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을 하나 터뜨렸다. 그는 전시장 입구에 문제의 도전장인 ‘반국전(反國展) 선언’을 써서 붙였다. 그 선언문은 다음과 같았다.

뭇 봉건의 아성인 국전에 반기를 들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형 시각 개발과 아울러 가장 자유로운 창조 활동이 보장되는 명예롭고 혁신된 새 사회를 향해 창조적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한다.

박서보의 ‘반국전 선언’은 당시의 작가들이 화단에 데뷔하거나 작품을 발표하는 권위 있는 채널이었던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줄여서 ‘국전’이라고 부름)에 대해 반대와 저항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는 그 당시 젊은 작가나 기성 작가들 모두 참여하는 국내 유일한 관(官) 주도의 전시회였다. 국전에서 상을 탄 신진 작가들은 이를 통해 곧 미술계에 데뷔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따라서 국전은 화단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정통적인 제도적 매체였지만 국전의 팡파르 이면에서는 화단 내의 각종 갈등과 부조리가 흘러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3장 ‘반국전(反國展) 선언’에서

용어가 어찌됐든 박서보는 (한국적) 앵포르멜이 어떻게 안국동 연구소에서 태동되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그때 안국동 연구소 창문의 창턱을 팔레트처럼 썼었어요. 내가 직접 시장에서 사 온 산업용 페인트 통에서 페인트를 퍼서 창틀에다 발라 아연을 섞어서 물감을 만들고, 색깔도 섞어서 만들었어요.”

안국동 연구소 창문의 창틀에서 시작한 박서보의 예술적 시도는 가장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말해 극심한 빈곤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는 물감뿐만이 아니라 캔버스조차도 쓰다 버린 군대용 천막을 활용했다. 물론 작가로서 그런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때 최종적으로 나타날 시각적 효과를 완전히 예상하지 않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박서보의 예술적 실험의 동기는 사회적·개인적 궁핍과 짙은 관련이 있다.
4장 ‘현대미협(現代美術家協會: 현대미술가협회)’에서

실제로 이 ‘단념’의 차원을 정당화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서보는 직접 자신이 어떻게 묘법의 영감을 받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이 국어 공책에 숙제를 하면서 깍두기 공책 네모 안에 ‘닭’ 자 하나를 써넣으려고 하는 걸 우연히 보았어요. 그 주먹만 한 쪼끄만 손으로 연필을 잡고 네모 안에 예쁘게 글자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말야, 획 하나를 집어넣으면 다른 획이 네모 밖으로 삐져나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에라 안 되는구나’ 하고 신경질을 부리면서 그 네모랑 자기가 쓴 글자를 죄다 직직하고 연필로 지워버리더라구요. 그걸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프레임에 뭘 넣는다는 게 불가능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요.”

[…] 만약에 ‘저항’의 한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묘법이었다면 그것도 결국은 ‘표현’의 한 결과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창작이란 훨씬 복합적인 것을 나타냈다. 전쟁 후 자신감 있게 느꼈던 자신의 표현 양식이 시간이 흐르니 뭔가 맞지 않는 이질적인 양식으로 다가왔다.
8장 ‘전쟁 미학에서 묘법(描法)으로’에서

“한국 사람들끼리조차 단색화를 서구 미니멀리즘의 변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태생부터 달라. 우리는 무(無)에서 출발한 거야. 서양의 현대미술 대부분은 어떤 특정한 경향에 대한 이원론적 견해인 거지. 서양의 모노크롬은 다색주의의 상대적 개념에서 나온 거라서 완전 하얀색이나 완전 검정이지. 그런데 우리는 희끄무레하거나 거무스름하다는 거야. 희끄무레하다는 것은 도공들이 흙 밟아서 도자기 만들 때 일부러 유약을 발라 순도 100% 흰색이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색을 만든 거랑 비슷한 거지. 또 온돌방에 장작불을 지피면 천장이랑 서까래가 거무스름해지잖아. 수십 년 시간이 흘러 그을음이 쌓이며 나타나는 거무스름한 색. 내 작품이 블랙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색이 나는 게 바로 그거야. 무한대로 들어가는 정신의 깊이가 있는 거지.”

박서보의 이 말을 면밀히 되새겨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각이 함축되어 있다. 먼저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점과 형성 과정이 서양 현대미술과 달랐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색화론을 쓴다는 것은 결국 한국 현대미술사를 쓰는 작업이지, 서구 미술사를 인용하고 서구 미술론을 한국 미술에 단순 접목시키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하게 한다.
12장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단색화 작가





지은이 | 케이트 림
케이트 림(Kate Lim): 미술 저술가, 큐레이터, 아트 플랫폼 아시아(Art Platform Asia) 대표

2016년 국제미술포럼 “Fracturing Conceptual Art: The Asian Turn”(아시아의 반反개념 예술: 예술작업으로의 복귀)을 주최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이 포럼의 자료집을 편집, 출판했다.
기획을 맡은 전시로는 한중일 그룹전 「The 5th Neo-Moroism」(중국 북경, 2018년), 「In the Absence of Avant-Garde Reading」(북경, 2014년), 「인도 중국 현대 미술전: 풍경의 귀환」(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3년, 공동 기획) 등이 있다.

미술 칼럼니스트로서 《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와 《매일경제신문》에 다수의 미술 관련 글을 기고하였다.

주요 저술에는 “Language of Dansaekhwa: Thinking in Material”(2017, Fracturing Conceptual Art: The Asian Turn, Art Platform Asia), “Five Hinsek: A Prelude to Dansaekhwa”(2018, Korea: Five Artists, Five Hinsek – White, Tokyo Gallery + BTAP), “Making Sense of Comparative Stories of Art: China, Korea, Japan”(Morotai, Tokyo Gallery + BTAP, 2019년 출판 예정), “Kim Taek Sang: Layers of Color, the Breadth of Light”(2017, CAA), “조영남 대작(代作) 스캔들의 원죄”(2016, 월간중앙),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 “(2014, BooksActually, Singapor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