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림
저자: 함정임
역자:
구분: 국내서
발행일: 2012년 12월 26일
정가: 12,500원
페이지: 216 p
ISBN: 978-89-6053-216-8
판형: 148x210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림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는 우리 시대의 감성 노마드 함정임 작가의 미술 에세이집이다. 소설쓰기를 본업으로 영화, 사진,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로서의 삶’을 지향해온 그녀가 이번에는 명화에 대한 단상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지금도 일 년에 두 차례 전 세계로 예술 기행을 떠난다는 함정임은 길 위에서 만나 소중한 인연이 된 작가와 작품 들을 자신의 오랜 친구처럼 우리에게 소개한다. 카라바조, 렘브란트, 존 싱어 사전트, 프리다 칼로, 반 고흐와 같은 익숙한 화가부터 베이컨, 발튀스, 에드워드 호퍼, 사이 톰블리, 토마스 스트루스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의 현대 작가들까지 폭 넓게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오랜 애정을 탄탄한 지식과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중간중간 시의 형태로 쓰여진 부록을 통해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을 음미하는 기쁨도 크다. 정보 위주의 딱딱하고 어려운 미술책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이 에세이에 주목해보길 권한다. 풍부한 도판과 감성적인 해설을 통해 미술에 한 걸음 더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오래전부터 나는 ‘나’를 하나의 ‘작품’으로, ‘내 삶’을 하나의 ‘예술’로 볼 것을 제안해왔다. 예술은 더 이상 특수 계층만이 누리는 사치품이 아니며, 나와 절대 멀리 있지 않다.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얼마든지 예술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그러는 과정에 예술적인 눈이 열리고, 또 뜻밖에 예술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39쪽)
루벤스의 그림 [한복을 입은 남자]가 [한국 남자]가 되고 또 소설 주인공 ‘안드레아 코레아’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 작품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무한으로 질주하는 ‘상상’이라는 또 하나의 놀라운 세계이다. 세상은, 크게 두 부류, 상상하는 사람과 상상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세상은, 꽃처럼 발견하는 자, 곧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다시 우리를 먼 곳으로 이끈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아니 너는, 아아 나는 누구인가. 상상하라, 이 가을, 눈 뜨고도 상상하라. 그러면 자연은 놀라운 풍경(神殿)이 되고, 세상은 나의 작품(舞臺)이 된다. (79쪽)

르네 마그리트는 20세기 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물결의 핵심적인 화가. 그가 그린 수많은 신비로운 그림들은 정작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다다이즘의 모토를 멋지게 대변한다. 연인의 얼굴을 휘감은 흰 보자기도, 허공에 뜬 사과도,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뒤돌아선 신사의 뒷모습도, 그리스 여신의 얼굴에 흐르는 피는 ‘가시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화가는 [연인]이라, [기억]이라, [향수]라 이름 붙여도, 정작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 느끼는 사람의 것이다. (91쪽)

예술의 위대함은 간절하게 원하지만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을 스스로 이루도록 변화시키는 데 있다. 얼어붙은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혼탁한 정신을 정화시켜주며, 소멸해가는 생의 에너지를 고양시켜주는 것. 그리하여 삶의 숭고함을 깨닫는 힘. 12월의 밤, 내가 촛불을 켜고 렘브란트의 그림과 마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53~155쪽)
‘내가 본 것’과 유사한, 아니 흡사한 코드들이 환한 조명 아래 선명히 도드라질 때의 아뜩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실망스러운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즐거운 것도 아닌 기묘함으로 어리둥절해져서 불을 끄고 어둠 저편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때 나를 가둔 어둠상자를 울리며 중저음의 르네 지라르의 목소리가 몇 마디 들려온다. 어떤 예술품도 저 혼자 빚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자기도 모르게 오래 보고 오래 익혀온 것들을 흉내 내게 마련이라는 것. 예술 행위의 흉내 내기모방에 면죄부가 있다면 바로 그 ‘자기도 모르게’에 있다는 것. 자기도 모르게 어디에서 본 것 같은 어떤 것을 저지르게 될 때 새로운 무엇인가가 탄생되기도 한다는 것. 내가 본 것, 내가 찍은 것들은 절대 예술품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아주 조악한 것들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케르테츠의 사진들, 특히 관음증의 뒷모습을 보여준 [서커스]가 나에게 최고의 사진이라면, 내가 찍은 사진들, 특히 [서커스]를 나도 모르게 옮겨놓은 나의 <구경>은 최악의 것이다. 그러면서도 최고도 최악도 결국은 심장 뛰는 소리에 와서는 동일하다는 점을 부기해두고 싶다. 내 사진에 나타나는 케르테츠나 브레송적인 유사 재현을 아뜩함으로 넘겨버리면서도 나는 앞으로도 많은 부분 무수히 편재된 푼크툼(punctum)의 실체들과 기꺼이 마주칠 것이다. (196~199쪽)


















함정임

외국어를 배우기 전까지 잠깐 화가를 꿈꾸었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의 호의로 어머니 몰래 화실에 다닌 적이 있고, 문예지 기자시절 매달 갤러리에 발표하는 작품으로 ‘미의 언어’를 진행했다. YES24 웹진 부키앙에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을 연재했고, 삼성 웹진에 [이미지 노트]를 연재했다. 프랑스 체류시절 생애 첫 화집으로 마리 로랑생과 클로드 로랭의 화집을 샀고, 평소 에드워드 호퍼와 윌리엄 터너의 화집을 즐겨 본다. 소설쓰기를 본업으로 영화, 사진, 회화, 건축, 영화, 요리 등 ‘예술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일상의 숭고함과 예술의 일상성을 기리는 21세기 감성 노마드로 일 년에 두 차례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예술기행을 떠난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이 뽑혀 소설가로 데뷔했고, 문예지 기자와 계간지 편집장, 인문학출판사 편집위원으로 재직했다. 프랑스현대문학을 전문적으로 한국 독자에게 소개했고, 프랑스 대사관 문화과 도서발행에 다년간 협력했다. 소설집으로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곡두』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춘하추동』, 『내 남자의 책』 등이 있다. 예술기행서로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유럽예술묘지기행), 『인생의 사용』(파리기행),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미술에세이,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 『소설가의 여행법』(소설현장기행) 등이 있고, 번역서로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백상출판대상 우수번역), 『만약 눈이 빨간색이라면』, 『행복을 주는 그림』(공역)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